[#시헌] 생존신고 2018.2.28일 3월이 오기전에 살아있음을 팬 여러분들께 신고합니다
다음 셀카는 3월달에 만나요^.^ 사실 트위터에 사진 올리고 싶을때만 사진찍어보는건 안비밀..
셀카 찍기 너무 어려워요ㅠㅠㅠㅠㅠ 혹시 개인만의셀카 팁 있으면 추천좀...
多謝你的生存報告#金国宪##마이틴myteen##김국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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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图片】#T-ara##朴孝敏# (hyominnn) Ins 更新:안녕하세요
티아라 큐리, 은정, 효민, 지연입니다.
저희를 대신할 회사가 없어서 어떤 경로로 알려야 하나 고민 끝에 용기를 내어 이곳에 말씀드립니다.
언론에 보도된 중국과의 계약에서 멤버들이 슈퍼카를 선물 받았다는 내용과 90억 원에 대한 사실 확인을 위해 저희가 직접 웨이보를 통해 중국 왕쓰총 측(바나나 컬처)으로부터 위와 같은 사실은 허위이고 전혀 근거 없다는 공식적인 답변을 받았습니다.
데뷔 때부터 같이 고생한 회사와 모든 직원분들 역시 이러한 유언비어에 피해가 가지 않길 바랍니다.
앞으로도 '티아라'라는 이름으로 저희 네 명이 여러분들께 인사드릴 수 있고, 이 모든 것이 원만하게 해결되기를 바라는 것이 저희 네 명 멤버의 공식 입장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原文戳:https://t.cn/RHNl8xq
티아라 큐리, 은정, 효민, 지연입니다.
저희를 대신할 회사가 없어서 어떤 경로로 알려야 하나 고민 끝에 용기를 내어 이곳에 말씀드립니다.
언론에 보도된 중국과의 계약에서 멤버들이 슈퍼카를 선물 받았다는 내용과 90억 원에 대한 사실 확인을 위해 저희가 직접 웨이보를 통해 중국 왕쓰총 측(바나나 컬처)으로부터 위와 같은 사실은 허위이고 전혀 근거 없다는 공식적인 답변을 받았습니다.
데뷔 때부터 같이 고생한 회사와 모든 직원분들 역시 이러한 유언비어에 피해가 가지 않길 바랍니다.
앞으로도 '티아라'라는 이름으로 저희 네 명이 여러분들께 인사드릴 수 있고, 이 모든 것이 원만하게 해결되기를 바라는 것이 저희 네 명 멤버의 공식 입장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原文戳:https://t.cn/RHNl8xq
金爱烂《风景的用处》/김애란 <풍경의 쓸모>
那之后我没有再见过父亲。五年前,在我的婚礼上又见了一次,不过那更像是擦身而过。父亲短暂的站在一个父亲应该在的位置,以母亲和我希望的方式,填满我们所需要的时间。为了不让亲家抓到什么把柄,母亲不得不和父亲一起拍了照。就像职业游戏选手,职业高尔夫球选手一样,“职业”父母在婚礼结束之前都一直保持着微笑。
成为了“别家人”的父亲还一直参与“我们家”的大小事,这是父亲一直都坚持的事情之一。就像被遮住眼睛的人凭借双手的感觉猜测物体的名字,父亲以“礼物”的名义,努力的参与和纪念着每一个重要的节点。(…中略)那之后,父亲在高中毕业时送来电子词典,在研究生入学时送来领带,在我入伍时送来手表。明显能看出挑选时的费心,却又都是些普通得不能再普通的东西,就像谁都会有一支的钢笔,谁都会送的花束。那之中,红参浓缩液是我从父亲那里收到的最后一件礼物。但是,父亲的问候渐渐变少,并不是父亲变得不再关心,而是他的儿子已经大到度过了绝大多数社会必经程序的缘故,而是他的人生和我的人生中都不会再有要鼓着掌祝贺的事情了的缘故。
讲完课回家的路上,我常常看自己映在大巴车上的面孔。每当那个时候,我都会觉得“过去”并不会翻篇或消失,而是不断上涌而泻出的东西。我接触到的人,经历过的时间,承受过的情感都会介入我的眼神,参与到我的神态中。那些东西绝对不会消失,而是以表情的样式,以气氛的形态留存,像空气一样从内脏深处渗透出来。当并不痛快地概括出某个事件后那种无法轻易整理好的情绪之后,更是如此。“那件事”之后,我知道我的神情发生了微妙的变化。每当那种时候,我都觉得自己“吃掉”了我的过去,而那消化和残留直到现在都在进行中。
-
그뒤 아버지를 만난 적은 없다. 오 년 전, 결혼식장에서 한 번 봤지만 그건 ‘만났다’가보다 ‘스쳤다’고 하는 편이 맞았다. 아버지는 아버지의 자리에 잠깐 있었다. 어머니와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바랐던 시간만큼 있었다. 어머니는 사돈댁에 흉잡히지 않으려면 어쩔 수 없다는 듯 아버지와 사진을 찍었다. 그러고는 프로케이머, 프로골퍼 할 때 ‘프로’ 부모처럼 식이 끝날 때까지 미소를 잃지 않았다.
‘다른 집’ 사람이 된 뒤에도 ‘우리집’ 행사를 챙기는 건 아버지가 자주 해온 일 중 하나였다. 두 눈을 가린 사람이 손끝 감각에 의지해 사물의 이름을 알아맞히듯, 아버지는 ‘선물’의 형식을 빌려 인생의 중요한 마디마디를 더듬고 기념하려 애썼다. (…) 그뒤 아버지는 고등학교 졸업식 땐 전자사전을, 대학원 입학식 땐 넥타이를, 군 입대 즈음엔 손목시계를 보내왔다. 고심한 흔적이 역력한, 그러나 평범하기 짝이 없는 물건들이었다. 모두가 하는 만년필, 모두가 주는 꽃다발, 그런. 그중 홍삼진액은 내가 아버지로부터 마지막으로 받은 선물이었다. 그러니 언젠가부터 아버지의 안부가 뜸해졌다면 그건 아버지가 무심해진 탓이 아니라 당신 아들이 웬만한 사회적 의례를 다 마칠 만큼 나이든 까닭이었다. 당신 인생에도 내 삶에도 더이상 박수 치며 축하할 일이 생기지 않는 까닭이었다.
강의를 마치고 돌아올 때 종종 버스 창문에 얼비친 내 얼굴을 바라봤다. 그럴 땐 ‘과거’가 지나가고 사라지는 게 아니라 차오르고 새어나오는 거란 생각이 들었다. 살면서 나를 지나간 사람, 내가 결험한 시간, 감내한 감정 들이 지금 내 눈빛에 관여하고, 인상에 참여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 것은 결코 사라지지 않고 표정의 양식으로, 분위기의 형태로 남아 내장 깊숙한 곳에서 공기처럼 배어 나왔다. 어떤 사건 후 뭔가 간명하게 정리할 수 없는 감정을 불만족스럽게 요약하고 나면 특히 그랬다. ‘그 일’ 이후 나는 내 인상이 미묘하게 바뀐 걸 알았다. 그럴 땐 정말 내가 내 과거를 ‘먹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소화는, 배치는 지금도 진행중이었다.
这个短篇收录在金爱烂作家的小说集《外面是夏天/바같은 여름》中
#韩国文学# #韩国小说# #金爱烂#
那之后我没有再见过父亲。五年前,在我的婚礼上又见了一次,不过那更像是擦身而过。父亲短暂的站在一个父亲应该在的位置,以母亲和我希望的方式,填满我们所需要的时间。为了不让亲家抓到什么把柄,母亲不得不和父亲一起拍了照。就像职业游戏选手,职业高尔夫球选手一样,“职业”父母在婚礼结束之前都一直保持着微笑。
成为了“别家人”的父亲还一直参与“我们家”的大小事,这是父亲一直都坚持的事情之一。就像被遮住眼睛的人凭借双手的感觉猜测物体的名字,父亲以“礼物”的名义,努力的参与和纪念着每一个重要的节点。(…中略)那之后,父亲在高中毕业时送来电子词典,在研究生入学时送来领带,在我入伍时送来手表。明显能看出挑选时的费心,却又都是些普通得不能再普通的东西,就像谁都会有一支的钢笔,谁都会送的花束。那之中,红参浓缩液是我从父亲那里收到的最后一件礼物。但是,父亲的问候渐渐变少,并不是父亲变得不再关心,而是他的儿子已经大到度过了绝大多数社会必经程序的缘故,而是他的人生和我的人生中都不会再有要鼓着掌祝贺的事情了的缘故。
讲完课回家的路上,我常常看自己映在大巴车上的面孔。每当那个时候,我都会觉得“过去”并不会翻篇或消失,而是不断上涌而泻出的东西。我接触到的人,经历过的时间,承受过的情感都会介入我的眼神,参与到我的神态中。那些东西绝对不会消失,而是以表情的样式,以气氛的形态留存,像空气一样从内脏深处渗透出来。当并不痛快地概括出某个事件后那种无法轻易整理好的情绪之后,更是如此。“那件事”之后,我知道我的神情发生了微妙的变化。每当那种时候,我都觉得自己“吃掉”了我的过去,而那消化和残留直到现在都在进行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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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뒤 아버지를 만난 적은 없다. 오 년 전, 결혼식장에서 한 번 봤지만 그건 ‘만났다’가보다 ‘스쳤다’고 하는 편이 맞았다. 아버지는 아버지의 자리에 잠깐 있었다. 어머니와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바랐던 시간만큼 있었다. 어머니는 사돈댁에 흉잡히지 않으려면 어쩔 수 없다는 듯 아버지와 사진을 찍었다. 그러고는 프로케이머, 프로골퍼 할 때 ‘프로’ 부모처럼 식이 끝날 때까지 미소를 잃지 않았다.
‘다른 집’ 사람이 된 뒤에도 ‘우리집’ 행사를 챙기는 건 아버지가 자주 해온 일 중 하나였다. 두 눈을 가린 사람이 손끝 감각에 의지해 사물의 이름을 알아맞히듯, 아버지는 ‘선물’의 형식을 빌려 인생의 중요한 마디마디를 더듬고 기념하려 애썼다. (…) 그뒤 아버지는 고등학교 졸업식 땐 전자사전을, 대학원 입학식 땐 넥타이를, 군 입대 즈음엔 손목시계를 보내왔다. 고심한 흔적이 역력한, 그러나 평범하기 짝이 없는 물건들이었다. 모두가 하는 만년필, 모두가 주는 꽃다발, 그런. 그중 홍삼진액은 내가 아버지로부터 마지막으로 받은 선물이었다. 그러니 언젠가부터 아버지의 안부가 뜸해졌다면 그건 아버지가 무심해진 탓이 아니라 당신 아들이 웬만한 사회적 의례를 다 마칠 만큼 나이든 까닭이었다. 당신 인생에도 내 삶에도 더이상 박수 치며 축하할 일이 생기지 않는 까닭이었다.
강의를 마치고 돌아올 때 종종 버스 창문에 얼비친 내 얼굴을 바라봤다. 그럴 땐 ‘과거’가 지나가고 사라지는 게 아니라 차오르고 새어나오는 거란 생각이 들었다. 살면서 나를 지나간 사람, 내가 결험한 시간, 감내한 감정 들이 지금 내 눈빛에 관여하고, 인상에 참여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 것은 결코 사라지지 않고 표정의 양식으로, 분위기의 형태로 남아 내장 깊숙한 곳에서 공기처럼 배어 나왔다. 어떤 사건 후 뭔가 간명하게 정리할 수 없는 감정을 불만족스럽게 요약하고 나면 특히 그랬다. ‘그 일’ 이후 나는 내 인상이 미묘하게 바뀐 걸 알았다. 그럴 땐 정말 내가 내 과거를 ‘먹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소화는, 배치는 지금도 진행중이었다.
这个短篇收录在金爱烂作家的小说集《外面是夏天/바같은 여름》中
#韩国文学# #韩国小说# #金爱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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