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21
我真的要被气疯了。 不想花时间翻译所以papago了
[주성철 편집장] 光復香港 時代革命 본문듣기 설정
“7천홍콩달러 월세를 내서 감방 같은 방만 구할 수 있는데, 체포되어 감방으로 가는 게 두렵겠어요?” 지난 주말 서교동 갤러리 위안에서 있었던, 지난 1년여의 시간 동안 홍콩 시위대의 투쟁을 사실적으로 기록한 <신문에 보이지 못하는 전인후과>(The true story behind media coverage) 사진 전시회에 다녀왔다. 웡타이신 사원으로 유명한 웡타이신에서 시위에 참여한 누군가가 벽에 남긴 위와 같은 글귀를 찍은 사진이 눈에 띄었는데, 그 아래 설명을 보니 인구밀도와 집세 등을 고려할 때 홍콩 사람들의 1인당 거주면적은 탁구대 하나 정도의 크기라고 한다. 우리 돈으로 100만원 정도인 7천홍콩달러를 들여도 팍팍하게 살 수밖에 없는 홍콩의 젊은이들이 ‘光復香港 時代革命’(광복홍콩 시대혁명)이라는 구호를 내걸고 시위에 참여하는 이유를 알 것만 같았다.
더불어 올해 8월 23일, 13만여명의 홍콩 시민들이 정확히 30년 전 ‘발트의 길’을 본받아 시내에서 사자산 정상에까지 이르는 인간 띠를 이었던, 최종 60km에 달했던 <홍콩의 길> 사진도 감동적이었다. 발트의 길은 1989년 8월 23일, 당시 발트 3국의 시민 200여만명이 에스토니아 수도 탈린에서 라트비아 수도 리가를 거쳐 리투아니아 수도 빌뉴스에 이르는 총길이 678km를 인간 띠로 연결했던 길을 말한다. 당시 소련의 점령하에 있던 발트 3국이 독립에 대한 열망을 세계 각국에 보여주기 위해 계획했던 것으로, 시위 7개월 만에 리투아니아는 소련의 공화국 중 처음으로 독립을 선언하기도 했다. 그처럼 발트의 길은 세계 역사상 가장 대중적이고 창의적인 비폭력운동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그로부터 30년의 세월이 흘러, 홍콩 사자산 정상에는 ‘FREE HK’라는 불빛이 빛났던 것이다. 서울의 남산처럼 홍콩 시민들이 사랑하는 사자산은 오우삼 감독과 제작자 테렌스 창이 할리우드로 진출하면서, <윈드토커>(2002)와 <페이첵>(2003), <방탄승>(2003) 등을 제작하며 설립한 영화사 라이언록 프로덕션(Lion Rock Production)의 이름이기도 하다.
하지만 올해 초 범죄인 인도법(송환법) 개정안 논의로 촉발된 홍콩 시위는 최근 들어 상황이 점점 더 악화되고 있다. 최근에는 왕가위 감독의 모교이기도 한 홍콩 이공대학에서 격렬한 반중시위가 벌어지며 학교가 불길에 휩싸였고, 많은 시민들이 교내에 갇힌 학생들을 구출하기 위해 거리로 나서기도 했다. 사지를 향해 뛰어드는 홍콩 젊은이들을 보면서 사실상 원격의 지지와 응원의 목소리를 보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무책임하게 느껴질 정도로, 홍콩은 정말 그 끝을 알 수 없는 혼돈 속으로 빠져들고 있는 중이다. 이번호 특집은 현재 홍콩 시위를 이끌고 있는 운동가 조슈아 웡 인터뷰와 함께, 11월 28일 개막하는 제45회 서울독립영화제의 ‘반환 이후의 이미지들: 1997년 이후의 홍콩 독립영화’ 특별전 소개다. 부디 더 나은 내일을 맞이할 수 있길.
我真的要被气疯了。 不想花时间翻译所以papago了
[주성철 편집장] 光復香港 時代革命 본문듣기 설정
“7천홍콩달러 월세를 내서 감방 같은 방만 구할 수 있는데, 체포되어 감방으로 가는 게 두렵겠어요?” 지난 주말 서교동 갤러리 위안에서 있었던, 지난 1년여의 시간 동안 홍콩 시위대의 투쟁을 사실적으로 기록한 <신문에 보이지 못하는 전인후과>(The true story behind media coverage) 사진 전시회에 다녀왔다. 웡타이신 사원으로 유명한 웡타이신에서 시위에 참여한 누군가가 벽에 남긴 위와 같은 글귀를 찍은 사진이 눈에 띄었는데, 그 아래 설명을 보니 인구밀도와 집세 등을 고려할 때 홍콩 사람들의 1인당 거주면적은 탁구대 하나 정도의 크기라고 한다. 우리 돈으로 100만원 정도인 7천홍콩달러를 들여도 팍팍하게 살 수밖에 없는 홍콩의 젊은이들이 ‘光復香港 時代革命’(광복홍콩 시대혁명)이라는 구호를 내걸고 시위에 참여하는 이유를 알 것만 같았다.
더불어 올해 8월 23일, 13만여명의 홍콩 시민들이 정확히 30년 전 ‘발트의 길’을 본받아 시내에서 사자산 정상에까지 이르는 인간 띠를 이었던, 최종 60km에 달했던 <홍콩의 길> 사진도 감동적이었다. 발트의 길은 1989년 8월 23일, 당시 발트 3국의 시민 200여만명이 에스토니아 수도 탈린에서 라트비아 수도 리가를 거쳐 리투아니아 수도 빌뉴스에 이르는 총길이 678km를 인간 띠로 연결했던 길을 말한다. 당시 소련의 점령하에 있던 발트 3국이 독립에 대한 열망을 세계 각국에 보여주기 위해 계획했던 것으로, 시위 7개월 만에 리투아니아는 소련의 공화국 중 처음으로 독립을 선언하기도 했다. 그처럼 발트의 길은 세계 역사상 가장 대중적이고 창의적인 비폭력운동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그로부터 30년의 세월이 흘러, 홍콩 사자산 정상에는 ‘FREE HK’라는 불빛이 빛났던 것이다. 서울의 남산처럼 홍콩 시민들이 사랑하는 사자산은 오우삼 감독과 제작자 테렌스 창이 할리우드로 진출하면서, <윈드토커>(2002)와 <페이첵>(2003), <방탄승>(2003) 등을 제작하며 설립한 영화사 라이언록 프로덕션(Lion Rock Production)의 이름이기도 하다.
하지만 올해 초 범죄인 인도법(송환법) 개정안 논의로 촉발된 홍콩 시위는 최근 들어 상황이 점점 더 악화되고 있다. 최근에는 왕가위 감독의 모교이기도 한 홍콩 이공대학에서 격렬한 반중시위가 벌어지며 학교가 불길에 휩싸였고, 많은 시민들이 교내에 갇힌 학생들을 구출하기 위해 거리로 나서기도 했다. 사지를 향해 뛰어드는 홍콩 젊은이들을 보면서 사실상 원격의 지지와 응원의 목소리를 보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무책임하게 느껴질 정도로, 홍콩은 정말 그 끝을 알 수 없는 혼돈 속으로 빠져들고 있는 중이다. 이번호 특집은 현재 홍콩 시위를 이끌고 있는 운동가 조슈아 웡 인터뷰와 함께, 11월 28일 개막하는 제45회 서울독립영화제의 ‘반환 이후의 이미지들: 1997년 이후의 홍콩 독립영화’ 특별전 소개다. 부디 더 나은 내일을 맞이할 수 있길.
‘기생충’ 음악감독 정재일 “바흐도 놀랄 ‘엉터리 바로크’···멜로디도 계단처럼 만들었죠”
영화 <기생충>의 첫 장면이다. 요금을 내지 못해 온 가족의 전화가 끊긴 상황, 기우(최우식)와 기정(박소담)은 무료 와이파이가 절실하다. 반지하 집의 가장 높은 곳, 계단 위에 설치된 변기에 다다라서야 남매는 탄성을 내지른다. 이 풍경 위로 경쾌하고 따뜻하면서도 어딘가 불길한 피아노곡이 햇살처럼 쏟아진다. 선율은 착잡함을 감추지 않는다. <기생충>의 음악은 그런 식이다. 이야기를 이끌기보다는 시치미를 뚝 떼고 방관한다. 인물들은 웃고 울며 야단법석을 떠는데 음악만 홀로 우아하다. 이 부조화 덕분에 영화는 한층 기묘하고 강렬해진다. 극장을 나서자마자 음악감독의 이름을 찾아본 이유다.
“봉준호 감독님이 잘해주신 요리에 저는 소금이랑 후추 조금 뿌린 정도예요.”
지난 4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의 한 카페에서 정재일 음악감독(37)을 만났다. 그는 황금종려상 수상 소감을 묻자 쑥스러워하며 답했다. ‘그거 되게 중요한 것 아닌가요?’라고 되묻자 “그렇긴 하죠”라며 웃음을 터뜨린다. “런던에서 시상식 중계방송을 봤어요. 너무 놀라서 한 대 ‘퍽’ 맞은 것 같았어요. 시나리오 처음 받았을 때부터 ‘이건 다르다’는 느낌이 있었죠. 너무 치밀하고 재미있더라고요.”
그는 영화음악가 이전에 ‘천재 뮤지션’으로 유명하다. 15세에 프로 연주가가 된 그는 17세엔 한상원, 정원영, 이적 등과 함께 밴드 ‘긱스’의 멤버로 활동했다. 피아노, 기타, 베이스, 드럼 등 10개 이상의 악기를 수준급으로 연주하며 대중음악부터 국악, 클래식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창작한다. 영화뿐 아니라 창극, 뮤지컬, 연극, 무용 등 다른 예술 장르에도 거침없이 도전했다. 따로 정규 음악 교육을 받은 적은 없다. ‘천재’라는 별명이 조금도 어색하지 않은 이력이다.
봉 감독과의 작업은 2017년 <옥자> 이후 두 번째다. 그러나 두 영화에서 음악의 역할은 현격하게 다르다. “이번엔 <옥자>와는 달리 음악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으려고 했어요. 봉 감독님은 음악이 음악만으로 하나의 결을 이루길 원하셨죠. 드라마에 개입할 수도 있지만 또 수수방관할 수도 있는, 그런 음악요. 저로선 그 ‘결’이 무엇인지 탐색하는 과정이 꽤 오래 걸렸습니다.”
고민 끝에 그는 ‘바로크 음악’을 가져왔다. “바로크는 우아하고 감정이 배제된 것 같지만, 어떨 때는 슬프고 뽕짝 같은 멜로디도 있어요. 그러면서도 아주 정색하는 이미지가 있죠. 그 점이 <기생충>과 잘 맞겠더라고요.” 그가 작업에 매진하던 매일 아침,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연주하면서 마음을 가다듬었던 이유다. “사실 저는 음악을 학교에서 배운 것이 아니라 악보 구성은 잘 모르거든요. 그러다보니 ‘엉터리 바로크’가 나왔어요. 바흐가 들으면 ‘이게 뭐냐’고 했을 거예요. 그렇지만 그 점이 더 영화와 어울렸던 것 같아요.”
시나리오를 ‘읽고 또 읽었다’는 그는 서사에 대한 깊은 이해를 통해 음악을 구상해나갔다. 기택(송강호)네 반지하방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부잣집인 박 사장(이선균)네 계단을 타고 오른다. 계급의 격차는 수직의 이미지로 뚜렷하게 드러난다. 음악도 마찬가지다. “시작부터 끝까지 거의 모든 음악이 계단적인 멜로디 선율로 돼 있어요. 기택네 가족이 하나둘 박 사장네 집으로 들어갈 때 나오는 곡들(‘첫 번째 알선’ ‘두 번째 알선’ ‘세 번째 알선’)은 특히 상승하는 계단의 이미지가 강해요. 비슷한 멜로딘데 뒤로 갈수록 키가 올라가고 악기가 점점 더 가세하죠. 그러다가 ‘믿음의 벨트’에서 빵 터지는 거예요. ‘작전 완료’ 같은 이미지라고 할까요?” 반면 후반 이후에 나오는 ‘물바다’ 같은 곡에서는 지독한 하강의 이미지가 강조된다. “이게 끝인 줄 알았는데 저게 또 있고, 이걸 막으면 또 다른 게 나오는 ‘점입가경’의 상황을 음악에 담고 싶었어요. ‘물바다’는 기택의 분노나 절망이 가장 주요하게 표현된 곡입니다.” (대화에서 언급된 곡들은 지난달 30일 발매된 기생충 OST 앨범에서 만나볼 수 있다. 음악이 삽입된 영화 속 장면을 적절하게 소개한 곡의 제목들은 봉 감독이 직접 달았다.)
봉 감독이 “엔딩곡을 끝까지 듣는 것이 영화를 즐길 수 있는 또 하나의 팁”이라고 말해 <기생충>의 ‘쿠키 영상’이 된 곡이 있다. 봉 감독이 가사를 붙이고 배우 최우식이 노래한 ‘소주 한잔’이다. “봉 감독님께서 관객들이 ‘소주 한잔 하고 싶다’는 쓸쓸한 감정으로 집으로 돌아갔으면 좋겠다고 하셨어요. 여러 음악들을 생각하다가 봉 감독님이 자기가 좋아하는 록밴드 ‘퀸’처럼 만들어 보자고 하셔서 가사가 있는 노래를 짓기로 했죠. 감독님께 직접 부탁드렸더니 노래는 잘 못한다면서(웃음) ‘최우식이 자기가 노래 잘한다더라’면서 시켜보자고 하셨어요. 우식씨는 밴드 ‘크라잉넛’ 같은 멋이 있더라고요. 펑크처럼 직선적이면서도 어딘가 투박해보이는 그런 에너지가 있었어요.”
“음악으로 할 수 있는 건 다 해봐서, 더 도전하고 싶은 분야는 없어요. 영화 작업을 더 많이 해보려고 해요. 이번 작업 덕분에 영화 음악에 대한 애정이 더 커졌거든요.” 앞으로의 행보를 묻는 질문에 정 음악감독은 이같이 말한다. 여전히 그의 얼굴에는 ‘천재 소년’의 말간 미소가 종종 떠오른다. 제주를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오버데어>에도 참여한 그는 오는 7월과 8월 연극 <배신>과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으로 관객들을 만날 예정이다.
영화 <기생충>의 첫 장면이다. 요금을 내지 못해 온 가족의 전화가 끊긴 상황, 기우(최우식)와 기정(박소담)은 무료 와이파이가 절실하다. 반지하 집의 가장 높은 곳, 계단 위에 설치된 변기에 다다라서야 남매는 탄성을 내지른다. 이 풍경 위로 경쾌하고 따뜻하면서도 어딘가 불길한 피아노곡이 햇살처럼 쏟아진다. 선율은 착잡함을 감추지 않는다. <기생충>의 음악은 그런 식이다. 이야기를 이끌기보다는 시치미를 뚝 떼고 방관한다. 인물들은 웃고 울며 야단법석을 떠는데 음악만 홀로 우아하다. 이 부조화 덕분에 영화는 한층 기묘하고 강렬해진다. 극장을 나서자마자 음악감독의 이름을 찾아본 이유다.
“봉준호 감독님이 잘해주신 요리에 저는 소금이랑 후추 조금 뿌린 정도예요.”
지난 4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의 한 카페에서 정재일 음악감독(37)을 만났다. 그는 황금종려상 수상 소감을 묻자 쑥스러워하며 답했다. ‘그거 되게 중요한 것 아닌가요?’라고 되묻자 “그렇긴 하죠”라며 웃음을 터뜨린다. “런던에서 시상식 중계방송을 봤어요. 너무 놀라서 한 대 ‘퍽’ 맞은 것 같았어요. 시나리오 처음 받았을 때부터 ‘이건 다르다’는 느낌이 있었죠. 너무 치밀하고 재미있더라고요.”
그는 영화음악가 이전에 ‘천재 뮤지션’으로 유명하다. 15세에 프로 연주가가 된 그는 17세엔 한상원, 정원영, 이적 등과 함께 밴드 ‘긱스’의 멤버로 활동했다. 피아노, 기타, 베이스, 드럼 등 10개 이상의 악기를 수준급으로 연주하며 대중음악부터 국악, 클래식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창작한다. 영화뿐 아니라 창극, 뮤지컬, 연극, 무용 등 다른 예술 장르에도 거침없이 도전했다. 따로 정규 음악 교육을 받은 적은 없다. ‘천재’라는 별명이 조금도 어색하지 않은 이력이다.
봉 감독과의 작업은 2017년 <옥자> 이후 두 번째다. 그러나 두 영화에서 음악의 역할은 현격하게 다르다. “이번엔 <옥자>와는 달리 음악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으려고 했어요. 봉 감독님은 음악이 음악만으로 하나의 결을 이루길 원하셨죠. 드라마에 개입할 수도 있지만 또 수수방관할 수도 있는, 그런 음악요. 저로선 그 ‘결’이 무엇인지 탐색하는 과정이 꽤 오래 걸렸습니다.”
고민 끝에 그는 ‘바로크 음악’을 가져왔다. “바로크는 우아하고 감정이 배제된 것 같지만, 어떨 때는 슬프고 뽕짝 같은 멜로디도 있어요. 그러면서도 아주 정색하는 이미지가 있죠. 그 점이 <기생충>과 잘 맞겠더라고요.” 그가 작업에 매진하던 매일 아침,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연주하면서 마음을 가다듬었던 이유다. “사실 저는 음악을 학교에서 배운 것이 아니라 악보 구성은 잘 모르거든요. 그러다보니 ‘엉터리 바로크’가 나왔어요. 바흐가 들으면 ‘이게 뭐냐’고 했을 거예요. 그렇지만 그 점이 더 영화와 어울렸던 것 같아요.”
시나리오를 ‘읽고 또 읽었다’는 그는 서사에 대한 깊은 이해를 통해 음악을 구상해나갔다. 기택(송강호)네 반지하방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부잣집인 박 사장(이선균)네 계단을 타고 오른다. 계급의 격차는 수직의 이미지로 뚜렷하게 드러난다. 음악도 마찬가지다. “시작부터 끝까지 거의 모든 음악이 계단적인 멜로디 선율로 돼 있어요. 기택네 가족이 하나둘 박 사장네 집으로 들어갈 때 나오는 곡들(‘첫 번째 알선’ ‘두 번째 알선’ ‘세 번째 알선’)은 특히 상승하는 계단의 이미지가 강해요. 비슷한 멜로딘데 뒤로 갈수록 키가 올라가고 악기가 점점 더 가세하죠. 그러다가 ‘믿음의 벨트’에서 빵 터지는 거예요. ‘작전 완료’ 같은 이미지라고 할까요?” 반면 후반 이후에 나오는 ‘물바다’ 같은 곡에서는 지독한 하강의 이미지가 강조된다. “이게 끝인 줄 알았는데 저게 또 있고, 이걸 막으면 또 다른 게 나오는 ‘점입가경’의 상황을 음악에 담고 싶었어요. ‘물바다’는 기택의 분노나 절망이 가장 주요하게 표현된 곡입니다.” (대화에서 언급된 곡들은 지난달 30일 발매된 기생충 OST 앨범에서 만나볼 수 있다. 음악이 삽입된 영화 속 장면을 적절하게 소개한 곡의 제목들은 봉 감독이 직접 달았다.)
봉 감독이 “엔딩곡을 끝까지 듣는 것이 영화를 즐길 수 있는 또 하나의 팁”이라고 말해 <기생충>의 ‘쿠키 영상’이 된 곡이 있다. 봉 감독이 가사를 붙이고 배우 최우식이 노래한 ‘소주 한잔’이다. “봉 감독님께서 관객들이 ‘소주 한잔 하고 싶다’는 쓸쓸한 감정으로 집으로 돌아갔으면 좋겠다고 하셨어요. 여러 음악들을 생각하다가 봉 감독님이 자기가 좋아하는 록밴드 ‘퀸’처럼 만들어 보자고 하셔서 가사가 있는 노래를 짓기로 했죠. 감독님께 직접 부탁드렸더니 노래는 잘 못한다면서(웃음) ‘최우식이 자기가 노래 잘한다더라’면서 시켜보자고 하셨어요. 우식씨는 밴드 ‘크라잉넛’ 같은 멋이 있더라고요. 펑크처럼 직선적이면서도 어딘가 투박해보이는 그런 에너지가 있었어요.”
“음악으로 할 수 있는 건 다 해봐서, 더 도전하고 싶은 분야는 없어요. 영화 작업을 더 많이 해보려고 해요. 이번 작업 덕분에 영화 음악에 대한 애정이 더 커졌거든요.” 앞으로의 행보를 묻는 질문에 정 음악감독은 이같이 말한다. 여전히 그의 얼굴에는 ‘천재 소년’의 말간 미소가 종종 떠오른다. 제주를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오버데어>에도 참여한 그는 오는 7월과 8월 연극 <배신>과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으로 관객들을 만날 예정이다.
#韩语文摘#
【最温情的60个韩语故事】38.最后的旅行마지막 여행
첩첩산중 작은 마을에 칠순 노모를 모시고 사는 아들이 있었습니다.
层层叠叠的山中小村住着一位七旬老母与一位侍奉母亲的儿子。
온 마을에 소문이 자자한 효자. 그은 죽을 날이 멀지 않았다고 푸념하는 어머니를 참 극진히도 모셨습니다.
儿子是闻名全村的孝子。他用心侍奉离死期不远、经常唠叨的老母亲。
"애비야, 여기선 멀지?"
“孩子他爸啊,那个地方远吗?”
"어딜 말씀하셨어요, 어머니?"
“您说的是哪里啊,母亲?”
"아, 그 서울이라는 데 말이다."
“啊,就是那个叫做首尔的地方。”
"왜요, 가고 싶어서요?"
“怎么了,您想去吗?”
"아니다. 이 꼴로 가긴 어딜 간다고……."
“不了,我这模样怎么去呢…”
기억가서 단 한 번도 산마루 넘어 읍내 밖으론 나가 본 적이 없는 어머니.
记忆中,母亲一次也没有离开过这个山脊小镇。
어머니는 죽기 전에 꼭 한번 넓은 세상을 구경하는 것이 소원이었습니다.
母亲唯一的心愿就是临死前看一看外面宽广的世界。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를 서울, 하지만 차만 타면 멀미가 나는 통에 젋어서도 읍내 나들이조차 변변히 못한 어머니가 이 산골에서 서울까지 간다는 건 보통 일이 아니었습니다.
母亲已经不知念叨过多少次首尔了,但母亲年轻时就晕车,连拜访镇内人家都很困难,别说走出山谷到首尔了。
"하~어머니……."
“哈~母亲……”
아들은 손수레를 개조해 누울 자리를 만들고 생애 한 번도 해 본 적 없다는 어머니의 서울 구경을 준비했습니다.
儿子改造了手推车,造出了可以供躺下来的位子,为老母亲准备了平生第一次首尔观光。
"어머니, 서울 구경 시켜 드릴게요."
“母亲,我来带您去首尔旅游去了。”
"증말이냐? 지금 가는 거여?" 어머니는 어린 아이처럼 기뻐했습니다.
“真的吗?现在就出发?”老母亲就像孩子一样高兴不已。
"예, 어머니."
“是的,母亲。”
그 모습을 바라보는 아들의 입가에도 잔잔한 미소가 번졌습니다.
看着母亲的高兴劲儿,儿子嘴角边也泛出一丝微笑。
"가만 있거라, 그럼 짐을 싸야지."
“等等我,我去打包行李。”
어머니가 짐을 꾸린다며 장롱 깊숙한 곳에서 꺼낸 것은 보자기에 고이 접어 간직해 둔 수의였습니다.
老母亲翻遍了衣柜,在衣柜最里面翻出了一件打成包袱的寿衣。
"아니, 이걸 왜?"
“啊,这是要干什么?”
아들은 당황했지만 어머니의 그 마음을 알 것도 같아 차마 말릴 수 없었습니다.
儿子虽然十分惊慌,但他也知道母亲心里想着什么,并没有劝阻母亲。
어쩌면 생애 마지막일 수도 있는 여행.
反正这也算是母亲平生最后一次旅行了。
아들은 수레를 끌고 산 넘고 물을 건넜습니다. 마음과 달리 먼 여행이 힘에 부친 어머니는 점점 기력을 잃어갔습니다.
儿子推着手推车,翻山越河。在旅途中的老母亲却渐渐精力渐衰,神志不清了。
길에서 잠들고 길에서 눈뜨기가 몇날 며칠째 이어졌습니다.
母子俩餐风露宿了几天几夜。
어머니와 아들의 특별한 자가용이 언덕을 넘어 마침내 서울 문턱에 다다랐을 때 아들은 그만 통곡을 하고 말았습니다.
母亲与儿子乘着自己做的“私人轿车”翻越了丘陵,最后到达了首尔的边缘。这时,儿子不禁失声痛哭起来。
그토록 그리워하던 신천지가 바로 눈앞인데, 어머니는 수의 보따리를 꼭 끌어안은 채로 숨을 거두신 것입니다.
如此渴望的新天地就在眼前,此刻老母亲却却紧紧抱着寿衣,早已咽了气。
【最温情的60个韩语故事】38.最后的旅行마지막 여행
첩첩산중 작은 마을에 칠순 노모를 모시고 사는 아들이 있었습니다.
层层叠叠的山中小村住着一位七旬老母与一位侍奉母亲的儿子。
온 마을에 소문이 자자한 효자. 그은 죽을 날이 멀지 않았다고 푸념하는 어머니를 참 극진히도 모셨습니다.
儿子是闻名全村的孝子。他用心侍奉离死期不远、经常唠叨的老母亲。
"애비야, 여기선 멀지?"
“孩子他爸啊,那个地方远吗?”
"어딜 말씀하셨어요, 어머니?"
“您说的是哪里啊,母亲?”
"아, 그 서울이라는 데 말이다."
“啊,就是那个叫做首尔的地方。”
"왜요, 가고 싶어서요?"
“怎么了,您想去吗?”
"아니다. 이 꼴로 가긴 어딜 간다고……."
“不了,我这模样怎么去呢…”
기억가서 단 한 번도 산마루 넘어 읍내 밖으론 나가 본 적이 없는 어머니.
记忆中,母亲一次也没有离开过这个山脊小镇。
어머니는 죽기 전에 꼭 한번 넓은 세상을 구경하는 것이 소원이었습니다.
母亲唯一的心愿就是临死前看一看外面宽广的世界。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를 서울, 하지만 차만 타면 멀미가 나는 통에 젋어서도 읍내 나들이조차 변변히 못한 어머니가 이 산골에서 서울까지 간다는 건 보통 일이 아니었습니다.
母亲已经不知念叨过多少次首尔了,但母亲年轻时就晕车,连拜访镇内人家都很困难,别说走出山谷到首尔了。
"하~어머니……."
“哈~母亲……”
아들은 손수레를 개조해 누울 자리를 만들고 생애 한 번도 해 본 적 없다는 어머니의 서울 구경을 준비했습니다.
儿子改造了手推车,造出了可以供躺下来的位子,为老母亲准备了平生第一次首尔观光。
"어머니, 서울 구경 시켜 드릴게요."
“母亲,我来带您去首尔旅游去了。”
"증말이냐? 지금 가는 거여?" 어머니는 어린 아이처럼 기뻐했습니다.
“真的吗?现在就出发?”老母亲就像孩子一样高兴不已。
"예, 어머니."
“是的,母亲。”
그 모습을 바라보는 아들의 입가에도 잔잔한 미소가 번졌습니다.
看着母亲的高兴劲儿,儿子嘴角边也泛出一丝微笑。
"가만 있거라, 그럼 짐을 싸야지."
“等等我,我去打包行李。”
어머니가 짐을 꾸린다며 장롱 깊숙한 곳에서 꺼낸 것은 보자기에 고이 접어 간직해 둔 수의였습니다.
老母亲翻遍了衣柜,在衣柜最里面翻出了一件打成包袱的寿衣。
"아니, 이걸 왜?"
“啊,这是要干什么?”
아들은 당황했지만 어머니의 그 마음을 알 것도 같아 차마 말릴 수 없었습니다.
儿子虽然十分惊慌,但他也知道母亲心里想着什么,并没有劝阻母亲。
어쩌면 생애 마지막일 수도 있는 여행.
反正这也算是母亲平生最后一次旅行了。
아들은 수레를 끌고 산 넘고 물을 건넜습니다. 마음과 달리 먼 여행이 힘에 부친 어머니는 점점 기력을 잃어갔습니다.
儿子推着手推车,翻山越河。在旅途中的老母亲却渐渐精力渐衰,神志不清了。
길에서 잠들고 길에서 눈뜨기가 몇날 며칠째 이어졌습니다.
母子俩餐风露宿了几天几夜。
어머니와 아들의 특별한 자가용이 언덕을 넘어 마침내 서울 문턱에 다다랐을 때 아들은 그만 통곡을 하고 말았습니다.
母亲与儿子乘着自己做的“私人轿车”翻越了丘陵,最后到达了首尔的边缘。这时,儿子不禁失声痛哭起来。
그토록 그리워하던 신천지가 바로 눈앞인데, 어머니는 수의 보따리를 꼭 끌어안은 채로 숨을 거두신 것입니다.
如此渴望的新天地就在眼前,此刻老母亲却却紧紧抱着寿衣,早已咽了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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