让人感叹演员不是谁都可以当的台词量水准(震惊)
feat#金明民[超话]# One take #至上之法[超话]# 丨#Law School#
↓
真的牛逼,让我去背台词我估计也背不出来,总之强推法学院很好看
金明民是演技之神
法庭题材台词真的好多啊,想起了听见你的声音李宝英也很绝,金明民牛逼
one take8分钟一个人说台词 演技太牛了吧
民座就是民座,这个台词量很绝但是也要带着感情用演技去诠释 厉害了
想起了w两个世界李钟硕one take 不愧是金明民
金明民本来台词就说的好 居然这么多台词
到底怎么背下来啊…
法学院超级好看
不仅台词绝演技还很绝 两者具备太厉害了
金明民甚至说台词的时候像那份职业的人 演活了 尊敬无比
明民座……
所以说民座不愧是民座啊…不是随便这么叫的
啊我一句也背不下来
神明民 演技之神
晕我读下来都很困难
台词量➕one take ➕演技 这真的是因为是金明民才可能的
疯了大发!
~
翻译阵亡,附上台词原文:
99명의 범인을 놓치더라도 한 명의 억울한 피해자를 만들지 마라. 고인이 된 서병주 검사가 제일 싫어하는 말이었습니다. 99명의 범인을 놓치면서 생기는 억울한 피해자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검사의 본분은 단 한 명의 억울한 사람도 만들지 않는 것이라 했습니다. 그런 고인이 뺑소니로 억울한 피해자를 만들고 검사로서의 삶이 무너지기 시작했고 급기야 죽음에 이르렀습니다. 분명한 건 고인은 자신의 죽음으로 도 한 명의 억울한 피해자를 추가하고 싶지 않았을 것입니다. 처음부터 수사기관은 절 범인으로 정해놓고 수사했습니다. 제게 불리한 증거나 정황만 보고 유리한 증거와 정황은 무시했습니다. 우발적 살인이 아닌 계획적 살인의 가능성은 아예 배제했습니다. 족적에 매몰된 수사부터 문제였습니다. 계획 살인이라면 족적을 남기는 어리석은 짓을 했을까요? 아 이건 피고인으로서 제 족적을 남기고 싶지 않아서입니다. 제가 피고인석에 서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로스쿨 오기 전까진 전 평생 이 자리에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절 피고인으로 만든 검사님이 서병주씨보다 더 끔찍하지만 격분해 지문을 남기고 살인을 한 만큼 어리석진 않거든요. 제가 커피에 설탕을 타 먹인 걸 진범이 목격해야만 설탕 봉지를 가져갈 수 있다고 했습니까? 목격은 다른 방법으로도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사건 당일 행방이 묘연해진 피해자의 볼펜 수사기관은 관심조차 갖지 않았습니다. 필로폰 투약 방법 또한 주사일 가능성을 아예 배제했습니다. 위가 위치한 여길 필로폰 주사 바늘로 깊이 찔렀다면 위로 약물이 들어갔겠죠. 근데 수사기관은 왜 이걸 인슐린 주사 흔적이라고 그냥 넘어갔을까요? 방어흔은 필사적이지도 많지도 않았습니다. 치밀하게 족적을 남기지 않고 몰카를 설치한 진범이라면 빨리 살해할 수 있는 주사를 택할 가능성이 큽니다. 음료로 인한 투약은 사망에 이르기까지 사람마다 다르긴 하겠지만 길게는 30분 정도까지 소요될 수 있고 주사 투약은 정맥을 통할 경우 수초 이내에 쓰러지거나 정맥이 아닌 곳으로 주입한다 하더라도 10분을 넘기긴 힘들다고 하니까요. 저랑 강 솔B가 다녀간 이후 14시 25분경 진범이 피해자에게 가서 필로폰 주사를 투여했을 경우 사망추정시각과도 거의 맞아떨어집니다. 족적, 몰카, 주사 이 모든 의구심들은 검찰 측에서 나왔어야 했고 이 모든 가능성들을 함부로 배제해선 안 되었습니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들어서는 안 되었습니다. 제가 범인이란 확증편향에 빠져 진범이 거릴 활보하게 하는 어리석음을 범해선 안 됩니다.
제가 정말 로스쿨 살인마일까요? 합리적 의심이 들지 않습니까? 의심스러우면 피고인의 이익으로 기억해 주십시오.
이건 제 알리바이를 입증하는 스모킹 건입니다. 사건 당일 그 시각 제 노트북을 해킹하러 왔다가 옷장에 숨었던 친구가 제 결백을 밝혀주기 위해 녹음한 진술이 담겨져 있습니다. 그동안 증인으로 서 줄 것을 설득해왔지만 실패했는데 오늘 전예슬양에게 이걸 전해 주는 용기를 내주었습니다.
그럴 필요 없습니다. 제출할 생각 없으니까요. 천만다행으로 스모킹건을 확보하긴 했지만 이건 현재 증거로서의 능력이 없습니다. 이것과 상관없이 제 판결이 어떻게 날 것인지 그게 궁금합니다. 수차례 공판을 통해 저는 범인을 정해놓고 끼워 맞추기식 편사 수사를 한 검찰에서 제시한 유죄 증거의 탄핵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사건 현장에 설탕이 있었다고 진술한 헌법학자께선 재판부가 자신의 진술의 신빙성을 의심하지 않기 바라는 탄원서를 가지고 이 자리에 오셨습니다. 검사의 피의사실공표로 아버지를 잃은 제자는 유죄추정의 뜨거운 맛을 보고도 무죄추정의 희망을 버리지 못하고 저기 앉아 있습니다. 검사의 삽질을 보다 못해 삼촌을 죽인 진범을 직접 찾아 나선 제자도 이 판결을 주목하고 있습니다. 검사 측은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는 증명을 다하지 못하였고 그것은 저의 무죄로 귀결되어야 합니다.
형법 교수인 저는 학생들에게 법이 정의롭다고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법을 정의롭게 하는 것은 무죄추정주의와 증거재판주의에 입각한 법관의 공정한 저울질뿐이라고 가르쳤습니다. 본 법정에서 저 예비 법조인들에게 공정한 저울질에 의한 정의로운 판결이 무엇인지 똑똑히 보여주시길 바랍니다. 이상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죄가 나온다면 항소심 재판부에 제출할 겁니다.
feat#金明民[超话]# One take #至上之法[超话]# 丨#Law Scho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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民座就是民座,这个台词量很绝但是也要带着感情用演技去诠释 厉害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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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明民本来台词就说的好 居然这么多台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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不仅台词绝演技还很绝 两者具备太厉害了
金明民甚至说台词的时候像那份职业的人 演活了 尊敬无比
明民座……
所以说民座不愧是民座啊…不是随便这么叫的
啊我一句也背不下来
神明民 演技之神
晕我读下来都很困难
台词量➕one take ➕演技 这真的是因为是金明民才可能的
疯了大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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翻译阵亡,附上台词原文:
99명의 범인을 놓치더라도 한 명의 억울한 피해자를 만들지 마라. 고인이 된 서병주 검사가 제일 싫어하는 말이었습니다. 99명의 범인을 놓치면서 생기는 억울한 피해자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검사의 본분은 단 한 명의 억울한 사람도 만들지 않는 것이라 했습니다. 그런 고인이 뺑소니로 억울한 피해자를 만들고 검사로서의 삶이 무너지기 시작했고 급기야 죽음에 이르렀습니다. 분명한 건 고인은 자신의 죽음으로 도 한 명의 억울한 피해자를 추가하고 싶지 않았을 것입니다. 처음부터 수사기관은 절 범인으로 정해놓고 수사했습니다. 제게 불리한 증거나 정황만 보고 유리한 증거와 정황은 무시했습니다. 우발적 살인이 아닌 계획적 살인의 가능성은 아예 배제했습니다. 족적에 매몰된 수사부터 문제였습니다. 계획 살인이라면 족적을 남기는 어리석은 짓을 했을까요? 아 이건 피고인으로서 제 족적을 남기고 싶지 않아서입니다. 제가 피고인석에 서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로스쿨 오기 전까진 전 평생 이 자리에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절 피고인으로 만든 검사님이 서병주씨보다 더 끔찍하지만 격분해 지문을 남기고 살인을 한 만큼 어리석진 않거든요. 제가 커피에 설탕을 타 먹인 걸 진범이 목격해야만 설탕 봉지를 가져갈 수 있다고 했습니까? 목격은 다른 방법으로도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사건 당일 행방이 묘연해진 피해자의 볼펜 수사기관은 관심조차 갖지 않았습니다. 필로폰 투약 방법 또한 주사일 가능성을 아예 배제했습니다. 위가 위치한 여길 필로폰 주사 바늘로 깊이 찔렀다면 위로 약물이 들어갔겠죠. 근데 수사기관은 왜 이걸 인슐린 주사 흔적이라고 그냥 넘어갔을까요? 방어흔은 필사적이지도 많지도 않았습니다. 치밀하게 족적을 남기지 않고 몰카를 설치한 진범이라면 빨리 살해할 수 있는 주사를 택할 가능성이 큽니다. 음료로 인한 투약은 사망에 이르기까지 사람마다 다르긴 하겠지만 길게는 30분 정도까지 소요될 수 있고 주사 투약은 정맥을 통할 경우 수초 이내에 쓰러지거나 정맥이 아닌 곳으로 주입한다 하더라도 10분을 넘기긴 힘들다고 하니까요. 저랑 강 솔B가 다녀간 이후 14시 25분경 진범이 피해자에게 가서 필로폰 주사를 투여했을 경우 사망추정시각과도 거의 맞아떨어집니다. 족적, 몰카, 주사 이 모든 의구심들은 검찰 측에서 나왔어야 했고 이 모든 가능성들을 함부로 배제해선 안 되었습니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들어서는 안 되었습니다. 제가 범인이란 확증편향에 빠져 진범이 거릴 활보하게 하는 어리석음을 범해선 안 됩니다.
제가 정말 로스쿨 살인마일까요? 합리적 의심이 들지 않습니까? 의심스러우면 피고인의 이익으로 기억해 주십시오.
이건 제 알리바이를 입증하는 스모킹 건입니다. 사건 당일 그 시각 제 노트북을 해킹하러 왔다가 옷장에 숨었던 친구가 제 결백을 밝혀주기 위해 녹음한 진술이 담겨져 있습니다. 그동안 증인으로 서 줄 것을 설득해왔지만 실패했는데 오늘 전예슬양에게 이걸 전해 주는 용기를 내주었습니다.
그럴 필요 없습니다. 제출할 생각 없으니까요. 천만다행으로 스모킹건을 확보하긴 했지만 이건 현재 증거로서의 능력이 없습니다. 이것과 상관없이 제 판결이 어떻게 날 것인지 그게 궁금합니다. 수차례 공판을 통해 저는 범인을 정해놓고 끼워 맞추기식 편사 수사를 한 검찰에서 제시한 유죄 증거의 탄핵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사건 현장에 설탕이 있었다고 진술한 헌법학자께선 재판부가 자신의 진술의 신빙성을 의심하지 않기 바라는 탄원서를 가지고 이 자리에 오셨습니다. 검사의 피의사실공표로 아버지를 잃은 제자는 유죄추정의 뜨거운 맛을 보고도 무죄추정의 희망을 버리지 못하고 저기 앉아 있습니다. 검사의 삽질을 보다 못해 삼촌을 죽인 진범을 직접 찾아 나선 제자도 이 판결을 주목하고 있습니다. 검사 측은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는 증명을 다하지 못하였고 그것은 저의 무죄로 귀결되어야 합니다.
형법 교수인 저는 학생들에게 법이 정의롭다고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법을 정의롭게 하는 것은 무죄추정주의와 증거재판주의에 입각한 법관의 공정한 저울질뿐이라고 가르쳤습니다. 본 법정에서 저 예비 법조인들에게 공정한 저울질에 의한 정의로운 판결이 무엇인지 똑똑히 보여주시길 바랍니다. 이상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죄가 나온다면 항소심 재판부에 제출할 겁니다.
《김정일전집》 제35권 출판
조선로동당출판사에서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의 불후의 고전적로작들을 년대순에 따라 체계적으로, 전면적으로 수록한 영생불멸의 김일성-김정일주의총서인 《김정일전집》 제35권을 출판하였다.
전집에는 위대한 장군님께서 주체71(1982)년 10월부터 주체72(1983)년 7월까지의 기간에 발표하신 력사적인 담화, 연설, 서한, 축하문을 비롯한 61건의 로작들이 수록되여있다.
로작들에는 우리 당의 강화발전과 사회주의건설에서 새로운 앙양을 일으키기 위한 투쟁의 앞길을 밝혀주신 위대한 장군님의 불멸의 사상리론적업적이 집대성되여있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우리 당을 주체형의 혁명적당으로 더욱 강화발전시키는것은 온갖 난관을 이겨내고 주체의 혁명위업을 완성하기 위한 결정적담보이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불후의 고전적로작 《조선로동당은 영광스러운 〈ㅌ.ㄷ〉의 전통을 계승한 주체형의 혁명적당이다》에서 우리 당은 주체사상을 지도적지침으로 하여 건설되고 활동하는 당, 전당에 유일사상체계가 튼튼히 서고 주체사상에 기초하여 철석같이 통일단결된 당, 인민대중과 혈연적인 련계를 맺고 그들의 역할을 높여 주체혁명위업의 완성을 위하여 투쟁하는 당, 영광스러운 주체형의 혁명적당이라는데 대하여 천명하시였으며 조선로동당을 영원히 위대한 김일성동지의 당으로 강화발전시키기 위한 방향과 방도들을 환히 밝혀주시였다.
당안에 유일사상체계를 더욱 철저히 세우는것과 함께 위대한 수령님식 사업방법을 따라배워 당사업을 혁명적으로 개선하는데서 나서는 과업들이 《현정세의 요구에 맞게 당사업에서 혁명적전환을 일으키자》, 《당조직정치사업을 힘있게 벌릴데 대하여》, 《당사업에서 나서는 몇가지 문제에 대하여》를 비롯한 로작들에 제시되여있다.
로작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어머님의 한생은 위대한 혁명가의 한생이다》, 《일군들은 김책동지처럼 살며 투쟁하여야 한다》 등에는 일군들이 평온한 날에나 준엄한 날에나 오직 위대한 수령님만을 믿고 따르는 혁명전사로 더욱 철저히 준비해나갈데 대한 내용이 담겨져있다.
인민군대가 만단의 전투동원준비를 갖추고 조국의 하늘과 땅, 바다를 철옹성같이 지키며 당의 령도에 끝없이 충실한 유능한 군사지휘간부들을 더 많이 키워낼데 대한 사상이 《전투훈련에서 형식주의, 요령주의를 철저히 극복할데 대하여》, 《유능한 군사지휘간부들을 키워낼데 대하여》를 비롯한 로작들에 반영되여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남포갑문건설은 어렵고 방대한 대자연개조사업이다》, 《인민경제 모든 부문에서 증산과 절약투쟁을 잘하며 행정규률을 강화할데 대하여》, 《인민생활에 깊은 관심을 돌릴데 대하여》 등의 로작들에서 서해갑문건설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고 사회주의경제건설에서 최대한으로 증산하고 절약하며 제품의 질을 높이고 인민생활수준을 한계단 끌어올리는것을 비롯하여 80년대속도창조운동을 더욱 심화발전시켜 당 제6차대회가 제시한 과업을 철저히 관철하기 위한 방도들을 뚜렷이 밝혀주시였다.
평양시를 현대적인 도시로 웅장화려하게 건설하기 위해 바치신 위대한 장군님의 심혈과 로고가 《평양시건설방향에 대하여》, 《평양시내의 거리들을 자기의 특성이 살아나게 건설하여야 한다》를 비롯한 로작들에 그대로 어려있다.
《문학예술작품창작에서 이룩한 성과를 더욱 공고발전시키자》, 《당을 노래하는 명곡을 많이 창작하여야 한다》, 《조선인민군협주단 창작가, 지휘자들과 한 담화》 등의 로작들에는 우리 당이 문학예술부문에서 이룩하여놓은 전통과 업적을 고수하고 빛내이며 더 많은 명작들을 창작완성할데 대한 독창적인 사상리론이 명시되여있다.
나라의 법질서를 강화하고 온 사회에 혁명적법무생활기풍을 튼튼히 세우기 위한 원칙적문제들이 《사법검찰사업을 개선강화할데 대하여》, 《사회주의법무생활을 강화할데 대하여》를 비롯한 로작들에 제시되여있다.
전집에는 이밖에도 근로단체사업에 대한 당적지도를 개선강화할데 대한 문제, 신문편집에서 주체를 세울데 대한 문제, 군중체육을 발전시킬데 대한 문제를 비롯하여 혁명투쟁과 건설사업에서 나서는 리론실천적문제들에 완벽한 해답을 주는 고전적로작들이 수록되여있다.
《김정일전집》 제35권에 수록된 로작들은 당 제8차대회와 당중앙위원회 제8기 제2차전원회의 결정을 철저히 관철하여 위대한 장군님의 유훈을 빛나게 실현하기 위한 우리 인민의 투쟁을 고무추동하는 위력한 사상정신적무기로 될것이다.
【조선중앙통신】
조선로동당출판사에서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의 불후의 고전적로작들을 년대순에 따라 체계적으로, 전면적으로 수록한 영생불멸의 김일성-김정일주의총서인 《김정일전집》 제35권을 출판하였다.
전집에는 위대한 장군님께서 주체71(1982)년 10월부터 주체72(1983)년 7월까지의 기간에 발표하신 력사적인 담화, 연설, 서한, 축하문을 비롯한 61건의 로작들이 수록되여있다.
로작들에는 우리 당의 강화발전과 사회주의건설에서 새로운 앙양을 일으키기 위한 투쟁의 앞길을 밝혀주신 위대한 장군님의 불멸의 사상리론적업적이 집대성되여있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우리 당을 주체형의 혁명적당으로 더욱 강화발전시키는것은 온갖 난관을 이겨내고 주체의 혁명위업을 완성하기 위한 결정적담보이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불후의 고전적로작 《조선로동당은 영광스러운 〈ㅌ.ㄷ〉의 전통을 계승한 주체형의 혁명적당이다》에서 우리 당은 주체사상을 지도적지침으로 하여 건설되고 활동하는 당, 전당에 유일사상체계가 튼튼히 서고 주체사상에 기초하여 철석같이 통일단결된 당, 인민대중과 혈연적인 련계를 맺고 그들의 역할을 높여 주체혁명위업의 완성을 위하여 투쟁하는 당, 영광스러운 주체형의 혁명적당이라는데 대하여 천명하시였으며 조선로동당을 영원히 위대한 김일성동지의 당으로 강화발전시키기 위한 방향과 방도들을 환히 밝혀주시였다.
당안에 유일사상체계를 더욱 철저히 세우는것과 함께 위대한 수령님식 사업방법을 따라배워 당사업을 혁명적으로 개선하는데서 나서는 과업들이 《현정세의 요구에 맞게 당사업에서 혁명적전환을 일으키자》, 《당조직정치사업을 힘있게 벌릴데 대하여》, 《당사업에서 나서는 몇가지 문제에 대하여》를 비롯한 로작들에 제시되여있다.
로작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어머님의 한생은 위대한 혁명가의 한생이다》, 《일군들은 김책동지처럼 살며 투쟁하여야 한다》 등에는 일군들이 평온한 날에나 준엄한 날에나 오직 위대한 수령님만을 믿고 따르는 혁명전사로 더욱 철저히 준비해나갈데 대한 내용이 담겨져있다.
인민군대가 만단의 전투동원준비를 갖추고 조국의 하늘과 땅, 바다를 철옹성같이 지키며 당의 령도에 끝없이 충실한 유능한 군사지휘간부들을 더 많이 키워낼데 대한 사상이 《전투훈련에서 형식주의, 요령주의를 철저히 극복할데 대하여》, 《유능한 군사지휘간부들을 키워낼데 대하여》를 비롯한 로작들에 반영되여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남포갑문건설은 어렵고 방대한 대자연개조사업이다》, 《인민경제 모든 부문에서 증산과 절약투쟁을 잘하며 행정규률을 강화할데 대하여》, 《인민생활에 깊은 관심을 돌릴데 대하여》 등의 로작들에서 서해갑문건설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고 사회주의경제건설에서 최대한으로 증산하고 절약하며 제품의 질을 높이고 인민생활수준을 한계단 끌어올리는것을 비롯하여 80년대속도창조운동을 더욱 심화발전시켜 당 제6차대회가 제시한 과업을 철저히 관철하기 위한 방도들을 뚜렷이 밝혀주시였다.
평양시를 현대적인 도시로 웅장화려하게 건설하기 위해 바치신 위대한 장군님의 심혈과 로고가 《평양시건설방향에 대하여》, 《평양시내의 거리들을 자기의 특성이 살아나게 건설하여야 한다》를 비롯한 로작들에 그대로 어려있다.
《문학예술작품창작에서 이룩한 성과를 더욱 공고발전시키자》, 《당을 노래하는 명곡을 많이 창작하여야 한다》, 《조선인민군협주단 창작가, 지휘자들과 한 담화》 등의 로작들에는 우리 당이 문학예술부문에서 이룩하여놓은 전통과 업적을 고수하고 빛내이며 더 많은 명작들을 창작완성할데 대한 독창적인 사상리론이 명시되여있다.
나라의 법질서를 강화하고 온 사회에 혁명적법무생활기풍을 튼튼히 세우기 위한 원칙적문제들이 《사법검찰사업을 개선강화할데 대하여》, 《사회주의법무생활을 강화할데 대하여》를 비롯한 로작들에 제시되여있다.
전집에는 이밖에도 근로단체사업에 대한 당적지도를 개선강화할데 대한 문제, 신문편집에서 주체를 세울데 대한 문제, 군중체육을 발전시킬데 대한 문제를 비롯하여 혁명투쟁과 건설사업에서 나서는 리론실천적문제들에 완벽한 해답을 주는 고전적로작들이 수록되여있다.
《김정일전집》 제35권에 수록된 로작들은 당 제8차대회와 당중앙위원회 제8기 제2차전원회의 결정을 철저히 관철하여 위대한 장군님의 유훈을 빛나게 실현하기 위한 우리 인민의 투쟁을 고무추동하는 위력한 사상정신적무기로 될것이다.
【조선중앙통신】
인터뷰1
처음에는 예쁜 외모로 주목받았지만, 결국은 실력으로 자신의 경쟁력을 증명했다. 빠른 스피드와 수준급의 기술을 자랑하는 이민아(29)는 외모와 실력을 모두 겸비했다는 주목과 함께 당당히 국가대표 에이스 자리까지 올랐다.
이민아가 여자축구의 불모지에 가까웠던 한국에서 국가대표 에이스로 거듭날 수 있었던 것은 본인의 노력뿐만 아니라 부모님의 아낌없는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하지만 지원도 환경도 상대적으로 좋지 않은 여자축구 현실 속에서 학창시절부터 성인이 되기까지 선수 활동을 유지하기는 쉽지 않은 것이 사실. 딸을 가진 부모의 입장에서도 쉽지 않은 결정이기도 했다.
좋지 않은 저변 속에서 이민아는 어떻게 한국을 대표하는 축구 선수로 성장할 수 있었을까. 이민아의 어머니를 만나 이민아의 어린 시절과 성장, 그리고 그를 바라보는 어머니의 심정에 대해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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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깁스 차고 드리블, 부모도 막을 수 없었던 이민아의 축구 열정
이민아가 축구를 시작한 시기는 초등학교 4학년 때. 축구에 관심이 많았던 교장선생님이 여자축구팀을 신설해 교사 식단 제공과 청소 제외 등 귀가 솔깃할 만한 혜택들로 학생들을 끌어 모았고, 이민아도 이에 솔깃해 축구부의 문을 두드렸다.
이민아는 축구의 매력에 금방 빠졌다. 집에도 가지 않고 밤늦게까지 운동장만 뛰어다녔다. 왜소한 체구의 딸이 늦은 밤까지 집에 들어오지 않는데 걱정하지 않을 부모님이 어디 있을까. 당연히 부모님은 딸이 축구를 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러나 이민아의 간곡한 부탁이 이어졌다. 당시 밥 먹기를 그렇게 싫어했던 이민아는 축구부에서 밥도 잘 나온다고, 축구를 계속 시켜준다면 밥도 잘 먹겠다고 약속을 하면서 축구를 계속하길 원했다(물론 이 약속은 성인이 될 때까지 지켜지지 않았다고 한다)고한다.
부모님은 ‘일단 지켜보자’라는 생각이었다. 그렇게 ‘6학년 때까지만’이 ‘중학교 때까지만’으로 이어졌다. 중학교 원서를 쓸 때 여자 축구부가 있는 학교를 지원하겠다고 했고, 눈물의 투쟁 끝에 부모님으로부터 상원중학교 진학 허락을 받아냈다.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부모님은 중학교를 마칠 때까지 축구를 시킬 생각이 없었다.
그러나 자식 이기는 부모가 어디 있으랴. 이민아의 축구를 향한 열정에 부모님도 두 손을 들었다.
아침 내내 구토를 했던 이민아가 그라운드에 나서자마자 언제 그랬냐는 듯 펄펄 뛰어다니고, 또 발목이 부러져 깁스 신세를 져야 했을 땐 다리 전체를 감싸 안은 깁스를 차고도 병실에서 쉬지 않고 축구공을 차며 축구에 대한 열정을 불태웠다. 그 와중에도 이민아는 근육이 계속 빠져 다리가 가늘어진다고 “내 근육, 내 근육”하면서 매일 펑펑 울었다고.
그런 그의 모습을 보며 ‘얘는 축구를 해야 할 운명이구나’라고 생각한 부모님은 그 후 더 이상의 반대 없이 딸의 축구 인생을 응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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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항으로 일본으로, 부상당할까 조마조마하며 지켜봤던 딸의 경기
이민아는 중학교 졸업 후 포항여자전자고등학교로 진학하면서 부모님과 떨어져 지내기 시작했다. 부모님의 원정길도 이때부터 시작됐다. 포항뿐만 아니라 다른 지방까지, 경기가 있는 곳마다 찾아다니며 딸의 경기를 응원했다.
부모님의 원정길은 이민아가 대학을 가서도 또 WK리그를 가서도, 그리고 일본을 가서도 계속됐다. 비록 대구에서 멀리 떨어진 곳까지는 가지 못했지만 경주나 구미, 대구와 비교적 가까운 지역의 주말 경기는 꼭 챙겼다.
경기 때마다 어머니는 관중석에서 잠시도 가만히 앉아있지 못했다. 경기장 끝에서 끝까지 이민아가 뛰어다니는 곳마다 계속 쫓아가 그를 응원했다. 딸의 활약을 더 가까이서 지켜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어디 다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는 마음도 컸다. 딸의 부상에 조마조마하며 잠시도 가만히 앉아있지 못했다.
그렇기에 이민아가 일본에서 입은 부상은 어머니에겐 안타깝기만 할 따름이었다. 이민아는 재작년 겨울에 입은 햄스트링 부상으로 1년 동안 고통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축구를 그만 둘 생각까지 하게 만든 전치 4~6개월의 심각한 부상이었다. 이제까지 큰 부상 없이 잘 뛰어 온 딸이었기에, 이번에 입은 큰 부상은 더욱 안쓰러울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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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예쁜 외모로 주목받았지만, 결국은 실력으로 자신의 경쟁력을 증명했다. 빠른 스피드와 수준급의 기술을 자랑하는 이민아(29)는 외모와 실력을 모두 겸비했다는 주목과 함께 당당히 국가대표 에이스 자리까지 올랐다.
이민아가 여자축구의 불모지에 가까웠던 한국에서 국가대표 에이스로 거듭날 수 있었던 것은 본인의 노력뿐만 아니라 부모님의 아낌없는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하지만 지원도 환경도 상대적으로 좋지 않은 여자축구 현실 속에서 학창시절부터 성인이 되기까지 선수 활동을 유지하기는 쉽지 않은 것이 사실. 딸을 가진 부모의 입장에서도 쉽지 않은 결정이기도 했다.
좋지 않은 저변 속에서 이민아는 어떻게 한국을 대표하는 축구 선수로 성장할 수 있었을까. 이민아의 어머니를 만나 이민아의 어린 시절과 성장, 그리고 그를 바라보는 어머니의 심정에 대해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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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깁스 차고 드리블, 부모도 막을 수 없었던 이민아의 축구 열정
이민아가 축구를 시작한 시기는 초등학교 4학년 때. 축구에 관심이 많았던 교장선생님이 여자축구팀을 신설해 교사 식단 제공과 청소 제외 등 귀가 솔깃할 만한 혜택들로 학생들을 끌어 모았고, 이민아도 이에 솔깃해 축구부의 문을 두드렸다.
이민아는 축구의 매력에 금방 빠졌다. 집에도 가지 않고 밤늦게까지 운동장만 뛰어다녔다. 왜소한 체구의 딸이 늦은 밤까지 집에 들어오지 않는데 걱정하지 않을 부모님이 어디 있을까. 당연히 부모님은 딸이 축구를 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러나 이민아의 간곡한 부탁이 이어졌다. 당시 밥 먹기를 그렇게 싫어했던 이민아는 축구부에서 밥도 잘 나온다고, 축구를 계속 시켜준다면 밥도 잘 먹겠다고 약속을 하면서 축구를 계속하길 원했다(물론 이 약속은 성인이 될 때까지 지켜지지 않았다고 한다)고한다.
부모님은 ‘일단 지켜보자’라는 생각이었다. 그렇게 ‘6학년 때까지만’이 ‘중학교 때까지만’으로 이어졌다. 중학교 원서를 쓸 때 여자 축구부가 있는 학교를 지원하겠다고 했고, 눈물의 투쟁 끝에 부모님으로부터 상원중학교 진학 허락을 받아냈다.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부모님은 중학교를 마칠 때까지 축구를 시킬 생각이 없었다.
그러나 자식 이기는 부모가 어디 있으랴. 이민아의 축구를 향한 열정에 부모님도 두 손을 들었다.
아침 내내 구토를 했던 이민아가 그라운드에 나서자마자 언제 그랬냐는 듯 펄펄 뛰어다니고, 또 발목이 부러져 깁스 신세를 져야 했을 땐 다리 전체를 감싸 안은 깁스를 차고도 병실에서 쉬지 않고 축구공을 차며 축구에 대한 열정을 불태웠다. 그 와중에도 이민아는 근육이 계속 빠져 다리가 가늘어진다고 “내 근육, 내 근육”하면서 매일 펑펑 울었다고.
그런 그의 모습을 보며 ‘얘는 축구를 해야 할 운명이구나’라고 생각한 부모님은 그 후 더 이상의 반대 없이 딸의 축구 인생을 응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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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항으로 일본으로, 부상당할까 조마조마하며 지켜봤던 딸의 경기
이민아는 중학교 졸업 후 포항여자전자고등학교로 진학하면서 부모님과 떨어져 지내기 시작했다. 부모님의 원정길도 이때부터 시작됐다. 포항뿐만 아니라 다른 지방까지, 경기가 있는 곳마다 찾아다니며 딸의 경기를 응원했다.
부모님의 원정길은 이민아가 대학을 가서도 또 WK리그를 가서도, 그리고 일본을 가서도 계속됐다. 비록 대구에서 멀리 떨어진 곳까지는 가지 못했지만 경주나 구미, 대구와 비교적 가까운 지역의 주말 경기는 꼭 챙겼다.
경기 때마다 어머니는 관중석에서 잠시도 가만히 앉아있지 못했다. 경기장 끝에서 끝까지 이민아가 뛰어다니는 곳마다 계속 쫓아가 그를 응원했다. 딸의 활약을 더 가까이서 지켜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어디 다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는 마음도 컸다. 딸의 부상에 조마조마하며 잠시도 가만히 앉아있지 못했다.
그렇기에 이민아가 일본에서 입은 부상은 어머니에겐 안타깝기만 할 따름이었다. 이민아는 재작년 겨울에 입은 햄스트링 부상으로 1년 동안 고통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축구를 그만 둘 생각까지 하게 만든 전치 4~6개월의 심각한 부상이었다. 이제까지 큰 부상 없이 잘 뛰어 온 딸이었기에, 이번에 입은 큰 부상은 더욱 안쓰러울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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