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승의 성지는 위대한 령장의 만고불멸의 업적을 길이 전한다

조국해방전쟁사적지를 찾아서

조국해방전쟁사적지는 22만㎢에 달하는 우리 나라의 령토에 비해볼 때 너무도 작은 지역에 자리잡고있다.

1950년대초엽까지만 하여도 아는 사람보다 모르는 사람이 더 많았던, 지도에 자그마한 점으로밖에 표기되여있지 않는 이 나라의 수많은 고장들중의 하나였다.

하지만 오늘날 이곳은 온 나라가 알고 세계가 아는 력사의 고장으로 빛나고있다.

조용히 그 이름만 불러도 제국주의침략자들에게 무자비한 철추를 내리고 이 땅에 위대한 전승을 안아오신 백전백승의 강철의 령장이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만고불멸의 업적이 가슴뜨겁게 안겨오는 전승의 성지,

이 땅에 위대한 전승이라는 력사적사변을 안아오신 우리 수령님의 천재적인 군사적예지, 무비의 담력과 배짱, 천출위인상이 뜨겁게 슴배여있는 력사의 고장이여서 이곳을 찾는 우리의 마음은 내짚는 발걸음보다도 끝없이 앞섰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김일성동지는 총대로 우리 혁명을 개척하고 승리에로 이끌어오신 백전백승의 강철의 령장이시며 군사의 영재이시다.》

우리가 평양시교외에 있는 조국해방전쟁사적지에 도착하였을 때는 한낮이였다.

전승의 성지를 옹위하듯 소소리높이 자란 나무들이 꽉 들어찬 산기슭의 도로를 따라 얼마쯤 달리느라니 조국해방전쟁사적지 종합안내도가 세워진 공지가 나졌다.

종합안내도앞에 서니 위대한 수령님의 생애에서 조국해방전쟁사적지이상 의의깊고 사연이 많은 곳이 없다고 하신 위대한 장군님의 명제가 안겨왔다.

숭엄해지는 마음을 안고 글발을 한자한자 새겨보고있는 우리들곁으로 이곳 일군인 리순경동무가 조용히 다가왔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하신 이 뜻깊은 교시를 통해서도 잘 알수 있는것처럼 우리 조국해방전쟁사적지에 소중히 보존되여있는 사적물들은 물론 키높이 자란 한그루 나무도 위대한 전승을 안아오신 우리 수령님의 만고불멸의 업적을 뜨겁게 전하고있습니다.지금으로부터 7년전 이곳을 찾으신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는 사적지의 사적물들과 자료들은 지울수도 없고 절대로 잊어서는 안되는 우리 혁명의 만년재보이라는데 대하여 말씀하시면서 조국해방전쟁사적지는 위대한 수령님의 전승령도사가 응축된 전승의 성지라는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시였습니다.》

우리를 안내하면서 그는 이런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지금으로부터 20여년전 조국해방전쟁사적지를 찾으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이곳에 세워져있던 사적비의 비문을 한자한자 새겨보시다가 마지막부분을 큰소리로 읽으시였다.



잊지 못할 조국해방전쟁사적지여

위대한 수령님 이룩하신 불멸의 업적

후손만대에 길이 전하라!

주체104(2015)년 6월 조국해방전쟁사적지를 찾으신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도 그 사적비에 새겨진 글발을 오래도록 더듬으시며 위대한 수령님들을 뜨겁게 추억하시였다고 한다.

뜨거워지는 마음을 안고 우리는 최고사령부지휘처로 향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당중앙위원회 정치위원회를 비롯한 200여차의 주요회의를 지도하신 최고사령부지휘처의 집무실은 그리 크지 않았다.

하지만 여기에 당의 통일과 단결을 위한 투쟁을 현명하게 이끄시고 인민군대의 정치사상적위력을 백방으로 강화하시며 전체 인민을 전쟁승리에로 조직동원하신 희세의 정치가, 탁월한 군사전략가이신 우리 수령님의 걸출한 위인상이 비끼여있다는 생각으로 가슴이 후더워졌다.

밖으로는 미제를 비롯한 제국주의련합세력을 쳐부셔야 하였고 안으로는 미제의 고용간첩들과 반당종파분자들의 음모를 걸음마다 짓부셔버려야 하였던 가렬처절한 전화의 나날 우리 수령님께서 헤치신 사선의 고비는 얼마였던가.

집무실벽에 남아있는 기총탄자리와 최고사령부지휘처가까이에 있는 나지막한 둔덕에 박힌 불발탄이 그것을 웅변적으로 말해주고있었다.

주체41(1952)년 어느날이였다.하늘을 뒤덮으며 날아든 미제의 공중비적들은 150여개의 폭탄을 퍼붓고 휘발유통까지 뿌리면서 최고사령부주변을 온통 불바다로 만들었다.

그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위험을 무릅쓰시고 최고사령부주변에 위치하고있는 구분대들의 대피를 지휘하고계시였다.

바로 그 순간 위대한 수령님께서 계시는 곳으로부터 불과 20여m 되는 곳에 500㎏짜리 폭탄이 떨어졌다.다행히도 불발탄이였다.

적의 기총탄이 우박치듯 쏟아지고 폭탄들이 옆에서 터지는 이런 위험천만한 곳에서 우리 수령님께서 전쟁을 승리에로 이끄시였다는 생각에 사람들은 차마 발걸음을 옮기지 못한다고 강사 리은별동무는 젖어드는 목소리로 이야기하였다.

우리의 뇌리에는 사적지를 찾으시였던 그날 수령님처럼 위험천만한 곳에 계시면서 전쟁을 승리에로 령도한 사실은 세계전쟁사상 그 류례를 찾아볼수 없다고 하시던 경애하는 총비서동지의 뜻깊은 말씀이 다시금 뜨겁게 되새겨졌다.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 우리 인민과 인민군장병들의 마음은 언제나 위대한 수령님께서 계시는 최고사령부에 가있었다.

온 나라 인민들과 인민군용사들이 자나깨나 창문가에 불밝은 최고사령부로 마음달리며 불굴의 신념과 의지로 전쟁의 승리를 앞당긴 그 나날을 최고사령부지휘처에 형상되여있는 대형반경화 《북두칠성 바라보이는 건지리의 밤》이 그대로 펼쳐보이고있었다.

우리는 위대한 수령님의 령도사적이 깃들어있는 여러 사적터를 지나 작전실에 이르렀다.집무실과 마찬가지로 너무도 수수한 반토굴로 된 작전실이였다.

강사는 작전지도를 한 벽면에 걸수 없어 다음벽면에까지 걸지 않으면 안되였던 이 크지 않은 작전실에서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전쟁승리를 위한 작전적구상을 무르익히시였고 땅크사냥군조운동을 비롯한 주체전법들을 창조하시였으며 당중앙위원회 제5차전원회의 보고문을 비롯한 고전적로작들도 집필하시였다고 말하였다.

바로 이 작전실에서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위대한 장군님께 만경대혁명가문의 뜻이 담긴 사연깊은 권총을 넘겨주시였다.

최고사령부의 작전실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작고 수수한 반토굴로 된 작전실,

이 작전실 하나를 통해서도 우리 수령님의 인민적풍모를 뜨겁게 느낄수 있었다.

하기에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 우리 나라에 왔던 외국의 한 대표단 단장은 자기들이 이곳으로 떠나올 때 조선은 지금 전쟁을 하고있기때문에 모든것이 파괴되였어도 위대한 수령님께서만은 으리으리한 작전실에서 인민들과는 좀 다르게 생활하실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와서 보니 수령님께서는 인민들과 다름없이 잡곡밥을 드시면서 소박한 반토굴집에서 전쟁을 령도하고계신다고 자기의 격정을 토로하였다고 한다.

돌아보면 볼수록 미제의 《강대성》의 신화를 깨뜨리고 빛나는 전승을 이룩하신 위대한 수령님에 대한 다함없는 감사와 경모의 정이 가슴가득 차오르는 조국해방전쟁사적지였다.

석수떨어지는 갱도공사장에도 자주 나오시여 군인들과 함께 식사도 허물없이 하시고 항일무장투쟁이야기와 전선형편도 들려주시면서 필승의 신심을 안겨주신 위대한 수령님, 몸소 가꾸신 과일나무에서 딴 과일을 군인들의 손에 들려주기도 하시고 공화국영웅들과 모범전투원들을 만나시여 그들의 위훈담을 들어주시고 기관단총과 손목시계를 선물로 주신 감동깊은 이야기들은 우리의 심금을 울려주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최고사령관도 전사도 씨를 뿌려 남새같은것은 자체로 해결하여 농민들의 부담을 덜어주자고 하시며 50여평의 남새밭을 몸소 가꾸시였습니다.그리고 앞으로 전쟁이 끝나면 우리 나라의 강과 호수에 많은 물고기를 길러 인민들의 식생활을 높이자고 하시며 못을 만드시고 손수 잉어를 기르시였습니다.》

강사 박미영동무의 해설을 들으며 뜻깊은 장소들을 돌아보는 우리의 가슴은 끝없이 설레였다.

혹시 우리가 걷고있는 이 길이 우리 수령님께서 사랑하는 전사들에게 무비의 힘과 용기를 안겨주시며 걸으시던 그 길은 아닌지, 혹시 저기 키높이 자란 저 나무가 전화의 그날 작전적구상을 무르익히시는 우리 수령님께 그늘을 지어드린 그 나무는 아닌지.

위대한 수령님께서 고사기관총수들에게 비행기사냥전법을 가르쳐주신 고사기관총좌지와 원수복을 입으시고 기념사진을 찍으신 곳, 몸소 닭을 기르시며 현대적인 닭공장을 건설할 구상을 무르익히신 사연을 전하는 닭장…

언제인가 조국해방전쟁사적지를 찾으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오래도록 닭장곁을 떠나지 못하시면서 여기가 내가 닭을 기르던 곳이라고, 나는 오늘과 같이 인민들을 위해 복무하는 대규모닭공장들을 일떠세우자고 전쟁때부터 닭을 길러보았다고 뜨겁게 교시하시였다.

이렇듯 인민에 대한 열화같은 사랑은 그대로 전 전선에 혈맥처럼 뻗어 우리 인민과 인민군군인들이 무비의 용감성과 영웅성을 발휘하게 하였다.조국의 산들이 영웅의 고지로 솟아 빛나게 하였고 후방인민들이 어떤 시련속에서도 전시생산과 수송을 보장하게 하였다.

최고사령부 작전국구역과 총참모부구락부를 돌아보면 전쟁의 중하를 한몸에 걸머지시고 불철주야로 사업하신 위대한 수령님의 로고가 어려와 가슴이 뭉클 젖어든다.

전쟁의 승리를 위한 수많은 작전회의를 지도하시면서도 온 나라를 돌보시느라 어느 하루도 편히 쉬지 못하신 우리 수령님이시였다.

때로는 말을 타시고 때로는 야전차를 타시고 때로는 험한 산길을 걸으시며 우리 수령님 전화의 나날에 이어오신 불멸의 자욱이 몇천몇만리인지 우리는 정녕 헤아릴수 없다.

위대한 수령님의 그 로고와 헌신속에서 조국해방전쟁사를 빛나게 장식하는 수많은 사랑의 전설들이 태여나게 되였고 당의 두리에 전체 인민이 더욱 튼튼히 뭉치게 되였으며 온갖 시련을 이겨내고 마침내 위대한 전승의 축포성을 터쳐올리였다.

참으로 조국해방전쟁사적지의 하나하나의 혁명사적물들과 혁명사적터들은 전화의 나날 언제나 인민들과 군인들속에 계시였으며 그들과 조금도 간격을 두지 않으시고 검소하게 생활하신 위대한 수령님의 인민적풍모, 그 어떤 뢰성벽력에도 끄떡하지 않으시고 우리 인민에게 필승의 신심을 안겨주신 령장의 담대한 기상과 배짱을 그대로 보여주고있었다.

돌이켜보면 3년간의 조국해방전쟁은 세계전쟁사에 류례를 찾아볼수 없는 간고하고 가렬처절한 전쟁이였다.

온 나라가 전쟁의 불바다에 잠기였던 그때 주체적인 군사사상과 전법, 비범한 군사적예지와 령군술로 미제를 때려부시는 세계사적기적을 이룩하신분이 우리 수령님이시였다.

조국해방전쟁의 빛나는 승리를 안아오시여 우리 조국과 인민의 운명을 구원해주신 위대한 수령님의 업적을 무슨 말로 다 칭송할수 있으랴.

나무 한그루, 풀 한포기에도 위대한 수령님의 체취와 숨결이 력력히 어려있는 조국해방전쟁사적지는 정녕 보병총과 원자탄의 대결이라고 할수 있는 가렬처절한 대결전에서 우리 인민이 과연 무슨 힘으로 싸워 위대한 승리를 쟁취할수 있었는가를 생동하게 보여주는 력사의 증견자이다.

위대한 수령님들의 불멸의 혁명업적을 끝없이 빛내여가시는 경애하는 총비서동지의 현명한 령도에 의하여 조국해방전쟁사적지는 력사주의원칙에서 더욱 훌륭하게 꾸려지게 되였다.

건지리혁명사적관을 새로 건설하도록 하시고 위대한 수령님들의 사진문헌들을 밝고 정중하게 모시며 사적자료들도 잘 전시하도록 이끌어주신 우리의 총비서동지이시다.

최고사령부지휘처를 비롯한 혁명사적건물, 혁명사적물, 혁명사적터들을 원상그대로 더욱 훌륭히 꾸리도록 하시고 혁명사적물영구보존체계를 빈틈없이 구축해놓도록 하신 경애하는 총비서동지의 비범한 예지와 정력적인 령도에 의하여 조국해방전쟁사적지가 국보답게, 전승의 성지답게 더 잘 꾸려지게 되였다.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 계시여 위대한 수령님의 전승업적은 영원토록 빛날것이며 우리 인민은 혁명의 새로운 승리를 반드시 앞당겨올것이라는것을 확신하며 우리는 조국해방전쟁사적지를 떠났다.

글 본사기자 오영심

사진 본사기자 최충성

당정책관철의 완벽성은 강한 조직력과 지도력이 담보한다

함경남도당위원회 사업경험

당의 령도의 지역별보좌단위이며 나라의 경제발전에서 중요한 몫을 맡고있는 도당위원회들이 든든해야 우리 당이 강해지고 전반적경제가 일떠서게 되며 나라가 부강해지게 된다.

도당위원회들이 맡고있는 무거운 책무를 원만히 수행하자면 결정적으로 조직력과 지도력을 제고하여야 한다.

강한 조직력과 지도력, 바로 여기에 당정책관철의 결정적담보가 있다.

함경남도당위원회 사업을 통해서도 우리는 이 문제의 중요성과 절박성, 생활력을 다시금 확증하게 된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모든 당조직들이 자기 부문, 자기 단위에 제시된 당정책을 튼튼히 틀어쥐고 철저히 관철함으로써 경제건설과 인민생활향상에서 획기적인 전환을 가져오도록 하여야 합니다.》

도당위원회의 사업은 오늘날 모든 당조직들이 당정책관철에서 성과를 거두자면 어떤 문제에 초점을 두고 어떤 방법론을 구현하여야 하는가에 대한 대답을 주고있다.

결정적인것은 작전력이다

최근 함경남도에서 새로운 변화가 일어나고있다.

비록 소문없고 눈에도 크게 띄우지는 않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변화속도는 더욱 빨라지고있으며 그것은 도의 경제발전과 인민생활향상의 확고한 승세를 확신케 한다.

이것은 무엇보다도 도당위원회의 작전력에 대한 평가라고 말할수 있다.도당위원회의 작전에서 특징적인것은 주동성, 과학성, 현실성이다.

구체적인 실례들을 들어 분석해보자.

도당위원회가 젖가루생산설비를 자체로 제작할것을 결정하고 해당한 조직사업을 진행할 때의 일이다.

당시 도에서는 손탁이 세고 내밀성있는 일군들을 파견하여 설비제작을 와닥닥 끝내자는 의견이 일반적이였다.

하지만 도당책임일군의 생각은 달랐다.도자체의 힘과 기술, 자재로 설비를 제작하는것으로 하여 기술적난문제들이 많은데다가 초보적인 경험조차 없어 욕망이나 뚝심만으로는 이 문제를 원만히 해결할수 없었던것이다.더우기 도안의 시, 군들과 공장, 기업소, 농촌리들의 실정이 서로 다른 조건에서 한가지 종류의 설비만 생산해서는 젖가루생산을 정상화하기가 매우 어려웠다.

문제는 이러한 실정을 고려하지 않고 가시적인 성과에만 급급하며 무턱대고 사업을 조직하는 형식주의, 낯내기식일본새가 아직까지 일군들의 머리속에 남아있는것이였다.

도당책임일군은 이번 기회에 무엇을 하나 해도 도의 경제발전과 인민생활향상에 실지 이바지할수 있는 완벽한것을 창조하는 기풍을 철저히 확립할것을 결심하였다.

물론 이 문제에 대하여 회의에서 강조할수도 있었고 잘못된 견해를 직접 지적할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보다는 일군들스스로가 느끼도록 하는것이 더 좋은 방법이였다.

하여 도당위원회는 해당 일군들이 도안의 젖생산 및 공급, 가공, 보관실태와 젖가루생산설비의 성능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알아본데 기초하여 좋은 의견을 다시 제기하도록 하였다.

실태를 료해하는 과정에 일군들은 큰 가책을 받았다.많은 농촌리의 풀판작업반들이 리소재지로부터 수십리나 떨어져있어 젖가공설비를 여러가지로 만들어 현장에 접근시키지 않으면 젖운반에 숱한 품을 들이면서도 젖가루의 생산과 질을 담보할수 없었던것이다.도의 실정을 고려하지 않고 주먹치기로 설비제작을 내밀었다면 어떻게 될번 하였는가 하는 생각에 일군들은 머리를 들수 없었다.

협의회에서 도당책임일군은 준절히 말하였다.

당정책관철의 목표는 결코 시제품생산에 있는것이 아니다.우리 도당위원회가 주동이 되여 과학적이고 현실적인 작전을 수립해야 당정책관철이 우리 도의 실질적인 발전과정, 전진과정으로 될수 있다.

도당위원회에서는 도의 실정과 현실적조건을 깊이 연구한데 기초하여 설비제작을 위한 작전을 새롭게 하였다.신흥산지열기술연구제작사, 국가과학원 함흥분원을 비롯한 여러 단위의 실력있는 과학자, 기술자들로 개발조를 뭇는 한편 그 단위들에서도 설비제작과 관련한 연구사업을 도와나서도록 하였다.또한 설비의 용량과 동력보장도 서로 다르게 설계하도록 방향을 그어주었다.기술실무에 밝은 도당일군들을 파견하여 연구사업을 당적으로 밀어주기 위한 대책도 세워졌다.

도당위원회는 과학적인 작전을 수립하는데 그치지 않고 현실적인 지도를 따라세웠다.

사실 도에서 젖가루생산설비를 자체로 제작하는 과정은 간단치 않았다.

제작초기부터 그 전 과정에 론의도 많았고 일부 사람들의 비난과 반발도 뒤따랐다.어느한 부분품의 시험만 해도 200여차나 진행하였다고 하니 그 고충을 가히 짐작할수 있다.

하지만 도당위원회는 당정책에 립각하여 과학기술사업에 대한 당적지도를 현실에 접근시키고 내세운 원칙을 일관하게 견지하였다.

그 원칙이 바로 전적으로 책임지는 립장에서 도와주는 원칙, 과학기술인재들을 존중하는 원칙, 기술적문제를 망탕 내리먹이지 않는 원칙 등이다.

연구조성원들의 시야를 넓혀주기 위해 앞선 단위들에 대한 참관도 조직하였고 도당책임일군이 직접 국가망과 해당 단위들에서 기술자료들을 수집하여 보내주기도 하였다.연구조성원들이 기술적난문제에 부닥쳤을 때에는 전문과학연구기관과 련계를 가지고 그 해결책을 제때에 내놓도록 도와주었다.그러면서도 언제 한번 과학기술적문제를 놓고 주관적의사를 표명하거나 책임을 추궁한것이 아니라 과학자, 기술자들의 의견을 항상 존중하였으며 그들이 창의창발성을 적극 발양하도록 믿음을 주며 이끌어주었다.

현실과 밀착된 이런 참신한 지도사업은 응당한 성과를 안아왔다.수입설비에 비하여 원가가 20%도 들지 않고 도에 흔한 자재로 성능높은 젖가루생산설비를 30여대나 훌륭히 제작하였다.설비들은 흥상젖소목장과 함흥시청년염소목장, 함주군 평풍덕염소목장에 설치된데 이어 시, 군들에도 련이어 도입되였다.

이러한 사업기풍은 결코 젖가루생산설비제작에만 국한된것이 아니다.

지난해 도인민병원개건, 함흥시 회상구역의 수백세대 살림집건설과 광포오리공장 고니사, 함흥김치공장, 함흥화학공업대학 화학실험관, 함흥의학대학 체육관건설에 이어 올해에 100여리의 금야군자연흐름식물길, 흥상젖소목장 젖소분장, 150여세대의 주요기계공장살림집건설을 비롯하여 도의 발전에서 큰 의의를 가지는 여러 대상건설이 성과적으로 결속되였거나 마감단계에서 추진되고있다.

이 모든것은 도당위원회의 과학적이고 현실적인 작전수립과 명백한 임무분담, 로숙한 지도능력이 안아온 고귀한 결실이다.

이곳 도당위원회사업은 당정책관철에서 조직력, 지도력이 얼마나 중요하며 그 생활력이 얼마나 큰것인가를 실천적으로 립증해주고있다.

어슴푸레 밝아오는 새벽입니다. 오늘도 어김없이 당신은 나의 가슴을 두드립니다. 그러나 고귀한 당신에게서 떨어져 나온 생명이라고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리기적인 나는 또 한번 눈을 감고 맙니다. 시계 초침 달리는 소리가 공간을 지배합니다. 당신은 언제나 그랬듯이 내가 아직도 자고 있는지 확인하고는 서둘러 또 세상과의 고된 싸움을 하러 갑니다.
내가 운동화를 수십번 바꾸는 동안 한번도 바뀌지 않은 당신의 운동화. 다 닳아버린 그 끈이 당신과 나 사이의 끊어질듯 한 긴장감을 말해줍니다. 끈을 묶는 당신의 등이 많이 굽었습니다. 가슴이 아파 당신의 좁다란 그 어깨에 손을 가만히 올려놓고는 아이처럼 당신의 품에 안겨 울고 싶지만 차마 그럴 수는 없습니다. 어리석은 나의 말과 행동으로 당신의 심장에는 분명히 수백개의 화살이 박혀 굳은살이 되였을 것이고 그것들 또한 가루처럼 부서질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다 알고 있습니다. 새벽부터 밤중까지 해빛을 전혀 볼 수 없는 당신의 눈과 그 긴 시간 내내 접시를 닦는 당신의 손이 이미 당신의 마음보다 더 망가져있다는 것과 당신이 감당해야 하는 삶의 무게의 대부분이 바로 나로 인한 것임을 말입니다.
우리의 소통은 높다란 산의 흔들다리처럼 위태롭고 외롭게 유지되다가 어느 순간부터인가는 소통이 아닌 웨침이 되였습니다.
외롭고 길지만 계속되는 당신의 웨침과 그 웨침을 외면하는 나. 우리의 관계는 적어도 내가 보기엔 돌이킬 수 없어보입니다.
어렸을 적 온 팔과 볼에 껌종이 뒤의 스티커를 훈장처럼 덕지덕지 붙이고 다니던 그 시절부터 당신은 내게 산이였습니다. 당신의 넓은 등에 기대여 잠이 들 때면 그 순간이 지속되기를 바란 적도 여러번이고 조금 커서는 어서빨리 효도해야지 하는 마음뿐이였습니다. 그러나 지금, 극도로 어려워진 가정형편이라는 우울한 현실과 마주하고 있으니 우리의 관계는 뒤바뀌였습니다.
나를 여전히, 변함없이 사랑하는 당신 앞에서 내가 등 돌린 커다란 산이 되여 당신을 내쳤기 때문입니다. 대답 없는 웨침, 한 맺힌 당신의 메아리. 나의 잘못임을 잘 알고 있는데 인정하기가 싫습니다. 나는 아직 어린가 봅니다.
매일 밤 침대시트를 눈물로 적시면서도 다음날, 말은 또 삐뚤게 튀여나옵니다. 지금 내 꿈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나는 “돈 많이 벌어 어머니 앞에서 웃을 수 있는 것”이라고 망설임 없이 대답할 것입니다. 사실 나는 어머니가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감히 당신께서 나를 사랑하시는 것보다 내가 당신을 더 사랑한다고 말할 수는 없으나 나는 사춘기라는 궁색한 변명 아래 사랑을 낯 간지러워하고 어려운 때일수록 뭉쳐야 한다는 옛말을 밀어내며 등 돌려 앉은 나약한 어린아이일 뿐입니다.
당신이 고된 새벽 식당일로 허리가 아프기 전까지만 해도 나와 당신은 자주 산에 올랐습니다. 사실상 산이라고 하기에도 민망한, 고질병인 허리디스크를 앓던 당신에게 딱 맞는 ‘언덕’ 정도가 적당할 것 같습니다.
그 때 머리를 두갈래로 땋던 나는 당신께 이렇게 투정 부렸습니다.
“어머니, 여기는 왜 메아리가 들리지 않아요?”
그 낮은 언덕에서 메아리가 들렸다면 그게 이상한 일이였겠지만 그 당시 나는 메아리가 꼭 듣고 싶었습니다.
하긴 나는 항상 사랑을 원했는지도 모릅니다. 어린 시절에는 메아리가 왜 안 들리냐는 식의 끝없는 질문으로 나에 대한 당신의 사랑을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지금도 낯이 간지러울 뿐 아직도 나는 당신의 끝없는 메아리가, 평생 반복되는 당신의 그 메아리가 사실 나는 좋습니다. 비록 겉으론 지겨운 척 밀어내지만…
나는 아직 어린가 봅니다. 나무를 보지 말고 숲을 보라던 당신의 말씀이 생각 납니다. 그 말을 나는 이렇게 해석합니다.
“순간을 보지 말고 인생을 보아라.”
인생에서 순간은 짧습니다. 이 시련도 분명 어머니의 인생에서 일부에 불과할 것입니다. 그러나 깊은 상처가 될 것임은 분명합니다. 그런 걸 생각한다면 나는 이래서는 안됩니다. 그러나 나의 의지 대로 되지 않는 순간입니다.
오늘도 세상으로부터 나를 지켜내기 위해 고된 전투를 하는 당신을 잘 알고 있기에 이제는 변화하리라 다짐합니다.
당신의 일방적인 ‘메아리’가 아닌, 서로의 가슴에 평생 훈훈한 삶의 원동력이 될 ‘메아리’가 되길 바라며 이 글을 어머니, 당신께 바칩니다.
어머니,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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